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작품들이 새롭게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채식주의자”는 2016년 그녀에게 맨부커상을 안겨 준 작품이기도 하며 신선하고 파격적인 전개로 현재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강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소년이 온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전개로 처음에는 ‘같은 작가가 쓴 책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두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점에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내가 느낀 바를 정리해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참고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알아 주기 바란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하지 않는가?
‘꿈’, ‘극단적인 채식’, ‘자해’, ‘바디페인팅’, ‘친족간의 교접’, ‘정신병원’.. 이 작품에는 일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일반인들의 역치를 뛰어넘는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이는 난해한 상징과 결부되어 독자를 긴장시키며 이윽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끼게까지 한다. 작가가 독자를 이렇게까지 자극하며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나는 그 핵심이 인간, 아니 동물의(인간도 동물이다!) 근원적인 폭력성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한강 작가의 이전 작품인 “소년이 온다”에서 묘사되었듯이 인간의 폭력성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총과 칼, 그리고 군홧발과 같은 명료한 형상으로 나타나 시민들을 학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는 좀 더 내밀하고, 원죄와 같은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다른 생명들을 죽인다. 이 중 대부분은 악의 없이 그저 일상적으로, 매일을 살아가기 위해서 발생한다. 우리는 가족들과 소풍을 나가서 행복하게 웃으며 닭다리를 뜯고, 친구와 소주를 기울이며 삼겹살을 굽는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월간 도축되는 가축의 수가 6~10만 마리에 이른다고 하니 우리는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다른 생명을 학살하는 존재라 할 수 있겠다.
나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고기를 좋아하고, 고기를 먹는 것에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 개인이 이러한 학살 행위가 가진 폭력성과 살기 위해 다른 존재들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원죄”에 대해서 자각하게 된다면? 이러한 물음이 소설 속 주인공 ‘영혜’가 처한 상황이자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주인공 ‘영혜’는 ‘꿈’을 계기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내재한 본질적, 근원적인 폭력성을 깨닫게 되고 이후로 채식을 시작한다. 그러나 뒤이어 동물 또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식물을 포함한 다른 생명을 해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고 자신 속의 동물성을 부정하기 위해 채소조차도 섭취하지 않고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가는 ‘금식’을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채식’은 영혜가 인간의 원초적 폭력성에 저항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으며, ‘금식’은 동물적인 폭력성에 저항하며 자신을 식물과 동일시하는 행위, ‘탈의행위’는 비폭력적인 존재(‘둥근 가슴’)로 회귀하고자 하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1부의 화자로 등장하는 ‘남편’은 인간의 긍정적인 면인 인간성조차 거세된 존재로 생각된다. ‘장인’과 더불어 이 작품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이나 도리어 소설 속 등장인물 중 가장 피해를 적게 본 인물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나를 비열한 놈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최대의 피해자는 나라는 걸 세상사람들이 다 압니다.” 라는 남편의 대사에서 이러한 부조리가 극대화된다.
3부의 화자이자 작품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그녀(영혜언니)는 일반적인 소시민을 상징한다. 인내와 양보로 남편(동서)과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지우’를 낳아서 기르나 영혜의 ‘발광’으로 고통받는다. 이후 영혜의 꿈이 전이되어 마찬가지로 인간의 근원적 폭력성에 대해서 어렴풋이 깨달으나 ‘지우’로 인해 현실의 삶을 포기하지 못하고 영혜와 달리 채식 등의 추가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동서’는 ‘그녀’(영혜언니) 의 남편이자 비디오 예술가로 인간의 이성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는 영혜가 유지해온 인간적 순수성(몽고반점)에 이끌리고, 그가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림으로서 영혜가 ‘꿈’과 ‘땀구멍에서부터 나는 고기 냄새’로부터 일시적으로 해방된다. 뒤이어 그가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림으로서 그는 영혜와 자유롭게 교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몸 위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내부의 본질을 바꾸지 못하는 일종의 기만으로, 영원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으며 이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동서’는 이성이 규범, 사상, 예술을 인간의 본능 위에 덧칠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인간의 폭력성과 야수성이 변하지는 않으며 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닌 일종의 기만에 불과함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한 그는 평소 ‘이성적이고 올곧은 성격’으로 묘사되지만, 그가 이러한 행동들을 하는 배경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적 욕구’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이성 또한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인간의 근원적 추악함을 폭로하며 인간을 동물과 같은 경지로 격하시킴과 동시에 동물의 자기보존적 본능마저도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들어 함께 비판한다.
다만, 이러한 추악함은 본질적, 존재적인 폭력성이므로 극복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겠지만, 이에 대해 뚜렷한 대안 제시가 없는 점은 아쉽다. (영혜는 식사를 일절 전폐하고 식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행위이다). 그나마 작중에서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대안은 영혜의 언니처럼 원죄에 끊임없이 고통 받으면서도 ‘지우’에 대한 사랑으로 본인의 생명의 끈을 붙잡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추가로 책을 읽으며 든 몇 가지 의문점 (옥의 티?)
2부에서 동서가 영혜에게 비디오 촬영을 부탁할 때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바로 전 1부에서 영혜는 우유가 포함된 식품 또한 거부하며 이러한 극단적 채식은 이후에도 유효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유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을 아무 저항 없이 먹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동서가 사는 집이 2부에서 17층으로 나오는데, 1부에서는 동서의 집이 710호라고 나온다.
반박시 여러분 말이 무조건 다 맞습니다!
A Korean Review of Han Kang's The Vegetarian (2) | 2024.10.20 |
---|---|
1:1 영어회화 어플 튜터링 사용후기 (4) | 2024.09.03 |
부산 수영구 뷰가 멋진 루프탑 카페 오후의 홍차 (9) | 2023.08.13 |
영어 공부 및 팝송 듣기 좋은 라디오 방송 AFN(American forces network) Korea (4) | 2023.08.02 |